고엽제 기사 (from. 한겨례)

"내가 고엽제 매립 폭로한 까닭은…"
대구에 250드럼 매몰 증언한 당시 주한미군 인터뷰
"구덩이에서 새들 죽어…한국인 위해 기꺼이 증언할 것"

기사전송 2011.05.21 16:30

33년 전인 1978년, 경북 왜관에 있는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묻었다고 증언한 퇴역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54)는 자신이 이 문제를 지금 밝히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고엽제 후유증이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한국인들에게 긴박한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의한 것이라고 20일(현지시각) 밝혔다.

현재 애리조나주에 살고 있는 하우스는 이날 <한겨레>와의 전화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히고, "(미국) 보훈처는 한국에 고엽제를 묻었다는 사실을 계속 부인했다"며 "명령에 의한 것이지만, 한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길은 늦었지만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이 문제를 밝히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내 병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올해 병원에서 내 증상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독교인으로서 양심의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33년이 지난 일을 이제와서 폭로하는 이유가 뭔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매립된 고엽제의 위험성을 누군가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이다. (고엽제로 인한) 나의 후유증이 점점 심각한 단계에 이르면서 사람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당신의 증상이 어떤가?

"간이 심각할 정도로 부었고, 간 기능이 약해졌다. 이로 인해 면역력이 크게 떨어졌다. 나는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하는 단계에 왔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합병증을 갖고 있다." 

-간 기능 이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

"고엽제 매립 얼마 뒤부터, 체중이 늘고, 피로를 빨리 느끼고, 마른 기침이 계속됐다. 그때 나는 21살이었다. 엑스레이를 여러 번 찍었지만, 의사들은 내게 어디가 잘못됐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미 보훈처는 '고엽제 매몰' 부인 

-당신의 증상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나는 올해 보훈병원의 한 의사로부터 당뇨병과 신경장애가 아마도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에 노출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이전에 미 국방부나 보훈처에 당신의 후유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나?

"5년 전에 보훈처에 내 상황을 알렸다. 그러나 보훈처 당국은 내 질환이 '에이전트 오렌지' 때문이라는 점을 지금도 부인하고 있다."

-군에서는 언제 제대했나?

"1978년 2월부터 1979년 2월까지 1년간 캠프 캐럴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1979년 2월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미시간에서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했다."

-33년 전 고엽제 매립이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꿨나?

"나는 오래전부터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내 간 기능은 지금 매우 약해져 있다.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이 문제를 분명하게 확인하기를 바란다."

-당신 외에 다른 사람들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나?

"당시 나와 함께 고엽제 매립작업을 했던 리차드 크래머는 다리 감각이 마비돼 걷지 못하게 됐다. 그는 당시 서울로 이송됐지만, 미군 당국은 우리들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았다. 로버트 트래비스는 나처럼 잦은 기침과 피부 발진으로 고통받고 있다."



다른 병사들도 다리 마비, 잔 기침 등 이상증상 

-당시 매립 작업에는 몇 명의 군인이 동원됐나?

"4명의 중장비 기사, 그리고 2명의 트럭 운전사 등 모두 6명이었다."

-매립 작업이 비밀리에 진행됐나?

"우린 단지 폐기물을 처리할 구덩이를 파라는 명령만 받았다. 우리는 그 구덩이에 들어가는 게 뭔지 전혀 듣지 못했다."

-매립 당시에도 그것이 고엽제라고 생각했나? 

"드럼통들이 작업장으로 운반되고서야 파묻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았다."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매립지 면적이 축구장 크기만 했다. (4~5월께) 처음 2주일간 55갤런(208ℓ)들이 드럼통 약 250개를 파묻었고, 그 후 이따금 약 30~40개씩의 드럼통을 가을까지 계속 매립했다."

-매립지의 정확한 위치를 지금도 기억하나?

"기지 뒤쪽 헬기장 근처다. 구글 어스로 그 지점을 보면 헬기장 부근에 병원이 2개 있다."

-매립 이듬해에 매립지에서 흘러나온 물질이 빗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인근의 물고기와 새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매립지의 구덩이를 완전히 파묻지 않았다. 구덩이 빈칸에 새들이 죽어있는 걸 봤다. 내가 이를 상관에게 보고하자, 구덩이를 파묻으라고 명령했다."

-한국에 와서 국회 등에서 증언할 용의가 있나?

"나는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아름다운 나라인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일에 내가 관여된 것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기꺼이 가서 증언대에 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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